사진 속 은행나무가 아직 푸릇한 걸 보니, 막 노랗게 물들기 직전에 찍어 두었던 사진입니다. 늦게 찾아온 추위 덕분인지, 빨리 찾아온 추석 덕분인지 꽤 길고 따스하게 느껴졌던 가을을 보내던 날들의 기록입니다.
유독 바빴던 올 가을, 창가에 선 마네킹들이 새옷을 빨리 갈아입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지만 따스한 날씨와, 매주 새롭게 만들어낸 꽃꽃이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창가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대문 앞에 키우던 자리공이 씨가 말랐을 듯도 한데, 왕성한 기운을 가진 자리공은 끝없이 오리미의 꽃꽃이의 재료가 되어 줍니다. 오리미표 '자리공과 아이들' 시리즈를 만들어도 될 거에요.
모두모두 대문 안에서 키워낸 식물들과,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으로 제멋대로 자란 들꽃들을 함께 섞어 꽃바구니를 꾸렸던 어느 날이에요.
그 사이 몇 주가 흘렀고, 얼마 전 오리미는 드디어 겨울옷 디스플레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작업실에서 디스플레이 옷들이 디자인되고, 꿰메지는 사이에 매장 안에 있는 마네킹에게 예전 옷을 한번 더 입혀보기로 합니다.
작년 겨울 한복인데, 다시 꺼내어 입혀보니 오랜만에 봐도 참 예뻐서 계속 보고 싶다는 의견이 만장일치로 결정되었습니다. 작년엔 은색 양단의 한 벌로 구성했었던 옷인데, 거친 질감의 초록 치마와 함께하니 또 다른 느낌입니다.
작년에 구성했던 은색의 한 벌을 보고 싶으신 분은 이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 오리미한복, 2016년 겨울 디스플레이 한복
그야말로 귀부인 같은 자태 아닌가요?
창가에 서 있을 때와, 이렇게 매장 안에서 가까이 보는 느낌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매장에서 이 옷을 마주한 손님들의 반응도 즐겁습니다.
동정을 밍크털로 두른 이 디자인이 생소하거나 거의 처음 보는 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개량'이나 '퓨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전통적으로 이렇게 동정 대신 털을 두른 형태의 한복은 존재해 왔답니다. 털 배자처럼요. 옛날엔 방한의 수단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중의 하나였으니까요.
그리고 이번 겨울 디스플레이 한복 컨셉이 정해지자마자 등장한 백일홍과 아이들.
동글동글 토실토실하다는 말이 그야말로 딱인, 사랑받고 자란 태가 나는 이 백일홍들은 집 마당에서 정성스레 키워낸 꽃들입니다. 백일홍과 홑백일홍, 겹백일홍을 종류별로, 색깔별로 고루고루 심어 키운 결과물입니다. 여름이 갈 무렵에 혹시나 해서 씨를 뿌렸는데, 따뜻한 날씨 때문인지 짧은 시간 동안에 무럭무럭 자나 예쁜 얼굴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꽃들을 다듬는 섬세한 손길이 함께합니다. 꽃들을 키워낸 이 손이 항상 오리미의 화병에 마술같은 재주를 선보이지요.
키가 훌쩍 큰 보라색 천일홍들과 노랗고 자그마한 미니국화들도 함께합니다.
완성된 화병의 모습입니다. 더할 나위 없이 활짝 피어난 백일홍들이 주인공이 되어 보는 이의 미소를 이끌어냅니다. '이거 조화 아니에요?'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던 백일홍들.
조화라는 오해를 받을 만큼 멀리서 봐도 쨍한 색감을 가진 백일홍들. 이번 겨울엔 이 백일홍들처럼 선명하고 밝은 색감들로 마네킹에 옷을 입히기로 결정했답니다.
그리하여 지금 오리미 매장의 창가에는 이렇게 밝은 색감의 치마들이 입혀져 있답니다.
비가 와서 매장 앞 은행나무의 노란 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버린 어느 날,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어요. 해가 진 후라 어두워서 옷이 잘 보이지 않지만, 한동안 창 밖 풍경을 노랗게 물들여 준 은행잎들이 다 떨어져 아쉬운 날이었습니다.
자, 그럼 2017년 겨울의 오리미 디스플레이 한복들의 자세한 소개는 다음 게시물로 이어갈께요.